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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 그 애

언젠가부터 미디어에 '딸바보'란 말이 떠다닌다. 결혼 여부나 자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냥, 다정하고 상냥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것 같은 남자의 이미지가 주류인 듯하다. 그런 남자들, 특히 그런 가정의 이미지를 볼 때면 내가 알던 어떤 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럼 괜히 숨이 막힌다.


이것은 어느 날 연기처럼 증발한 내 친구의 이야기다. 

거의 날 때부터 친구였던 그 애는 가족 얘기를 즐겨 했다. 요리를 잘하고 손재주가 좋은 어머니와 상냥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 번듯하고 공부 잘하는 두 살 아래 남동생. 그 애의 집은 교과서 같았다. 그림 같은 집에 어머니가 손수 만든 액자 속 환하게 웃는 가족사진이 가득했다. 그 애의 아버지는 주말을 늘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 애는 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녔다. 내가 그 애라도 동네방네 가족 얘기를 떠들고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그림 같은 집을 의심한 적도, 깨어지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가 가족 얘기를 뚝 멈췄을 때도, 그저 사춘기가 왔구나 했다. 갑작스러운 그 애 어머니의 장례식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그 애보다 나였다. 아홉 살 때부터 어머니가 아팠다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야 알고도 서운함보다 감쪽같음에 더 충격받았다. 그 후엔 좀 잊은 것 같다. 온 나라가 공부하라고 배려해주는 고등학생답게 입시 생각이 전부였다. 그 애는 장례식이 끝난 날부터 장례식도 가족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가 금방 잊어버리기 좋았다. 열심히 학교에 나오고, 수업이 끝나면 동생 밥 해줘야 한다며 곧장 집에 갔다. 애들은 그 애 동생이 초등학생 남짓인 줄 알았다. 두 살 차이인 걸 알고 나선 브라더 콤플렉스라고 했다. 그럼 그 애는 맞다며 웃었다.


그 애가 내게 다시 가족 얘기를 시작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주로 늦은 밤 갑작스레 전화해 독백하듯 떠들어댔다. 나에게 말하는 게 맞는지 헷갈리는 일방적인 이야기 속 집은 이제 교과서 같지 않았다. 그 애의 목소리는 담담할 때도, 웃음기가 감돌 때도, 들떴는지 화났는지 헷갈리게 격앙된 때도 있었다.


처음 미역국 끓였던 날 얘기했나? 뭐가 문젠지 국물 색이 엄청 탁했어. 밥 먹는 내내 엄청 눈치 봤잖아. 아빠랑 동생은 다 맛있다고 하는데, 어쩐지 그냥 먹어주는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정작 나는 맛이 어땠는지 모르겠더라.


옷을 개서 서랍에 넣어주다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 내가 없으면 두 사람은 어떻게 살까 싶기도 하고, 왜 나만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가장 큰 건 미안함이지. 내가 다림질을 못하거든.


이야기 속 그 애는 딸이 아니라 엄마 같았다. 쉽게 사람을 좋아하는 그 애는 늘 짝사랑 중이었지만 정작 그 상대와 사귈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게 ‘엄마 취급’에 익숙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집에서 엄마는 ‘여자’가 아니니까, 걔도 ‘여자’로 누군가의 곁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생각이지만, 그 땐 그랬다.


​어느 날 그 애는 귀가 시간으로 아빠와 자주 싸운다고 했다. 술마시다 늦게 오는 날엔 무조건 싸운다고. 남동생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든 외박을 하든 상관없었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애뿐이었다. 그런 얘기들을 듣다 문득,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 그 애는 분명 ‘엄마 역할’였다. 생활비를 받아 집에 필요한 것들을 사두며 관리했다. 동생이 기숙사에 들어간 후 주말마다 가져오는 옷 꾸러미를 빠는 건 그 애였다. 이사 갈 때 집을 알아보러 다닌 것도 그 애였다. 그런데 귀가 시간 같은 건 '여자'인 딸로 아버지의 통제를 받았다. 집안의 대소사를 정할 때도 그 애는 딸이었지 엄마가 아니었다. 집을 알아보는 것부터 이사 준비, 이사 후 짐정리와 청소의 8할은 그 애가 했으나 이사를 결정하는 것도 새집을 택하는 것도 그 애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요즘 집안일 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운다고 했다. 목이 다 쉬어 있었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 내 말에 그 애는 그래도 어떻게 그래, 중얼거렸다. 그냥 투덜대는 거야. 나 혼자 다 하는 것도 아냐. 다들 고마워하니까 나도 뿌듯해. 그 말에 나는 별문제 아니구나 생각했다. 바보 같았다.


꿈을 꿨어. 아빠랑 동생이 이제 난 필요 없다며 나를 버렸어. 둘 뒷모습을 보며 엉엉 울었는데, 깨고 나서 또 그만큼 울었어. 


이 집에서 내 존재 가치는 뭘까. 엄마 대신 내가 살아있는 게 괴로워. 더러운 집을 보면 죄책감이 들어. 그걸 나만 느끼는 게 억울한데 그게 당연한 것 같아. 장례식 때 어른들이 했던 말이 부적처럼 따라다녀. 이제 네가 잘해야 한다. 이제 집에 여자는 너뿐이니 네가 아빠랑 동생 잘 챙겨야 한다. 너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잘 못하겠는데 이 이상 할 자신도 없어.


그 애의 엄마는 오랫동안 집안의 누구를 챙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를 챙긴 건 그 애였다. 그 애는 한동안 학교도 안 가고 엄마 곁에 있었다. 매일매일 팔다리를 주무르고 바싹 마른 몸을 안아 화장실에 데려갔다. 그런 엄마를 보낸 자리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나온 그 말들에 어떤 기분이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고백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말이 그 애에게 닿기 전에 가로채는 상상을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가로채서 사람들의 입에 도로 욱여넣고 싶었다. 그 애의 뇌에 진득이 붙어있을 것들을 다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 했다. 화내는 대신 그 말을 부적처럼 안고 사는 애를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버지의 상냥함에 기대고 동생을 안쓰러워하여 떠날 생각조차 못하는 그 애를. 


동생이 고3이 되던 해, 대학에 안 가고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애에게 아버지는 무섭게 화를 냈다. 그 화에는 ‘네 미래나 걱정할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같은 어떤 다정함이 있었을 터이나 말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 애는 살면서 ‘나도 어리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그때도 아버지의 화를 그런 쪽으로 헤아리지 못했다. 동생이 대학에 간 후 유학 얘기가 나오자, 유학을 가고 싶어했던 그 애는 바로 포기했다. 집에서 두 명을 보내긴 버거우니 자기가 포기하는 게 맞다고 했다. 동생이 공부도 더 잘하고 미래도 좋으니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애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것이 그 집의 민주주의였다.


그 애의 가족은 기본적으로 번듯하고 온순하며 상냥했다. 그러니 누구도 그 애에게 엄마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고 그런 심정이 들도록 몰아가지 않았다는 그 애의 말도 사실일 테다. 그들은 그냥, 그 애를 그런 상황에 내버려뒀을 뿐이다. 그 애의 십대는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려 애쓰던 시절과 엄마가 죽은 후 자기가 딸인지 엄마인지 혼란스러워하며 보낸 시절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들여다봐 주지 못했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로 그 애의 괴로움을 퉁치려 했다. 책임질 필요 없는 일에 대해 자책하며 그 애가 질식하는 동안 주변 모두가 그 가족의 선량함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 애가 사라진 건 2017년 즈음이다. 가정에서 자기의 위치를 ‘엄마 역할’로 찾으려 했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엄마 역할'을 그렇게 단정한 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아빠도 동생도 그런 역할을 부탁한 적 없는데 자처한 꼴이 우습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대에 여자인 자신은 낄 수 없어 외로웠다는 사실을 깨닫자 허무해졌다고 했다. 가족이 조금만 덜 번듯한 사람들이었으면, 차라리 강압적인 사람들이었으면 그렇게 안 살았을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 엄마 없는 애도 상냥한 아빠를 둔 애도 없어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혼자인 게 때때로 몹시 고독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며 그 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왜 그런 괴로움을 그 애 혼자 느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왜 그 애가 집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으려 애썼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딸바보 얘기를 들으면 그 애가 떠오르는 이유를 모르면서 계속 떠올리는 것과 같다. 하나 깨달은 것은, 딸바보 안에 딸이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엔 딸을 애틋이 여기는 아버지의 이미지만 있다. 상냥하게 포장된 애정도 대상을 소유한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고, 소유는 상대의 섹슈얼리티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며 구체화된다. 귀가시간을 단속하고, 행동거지나 씀씀이를 감시하고, 유흥을 금하는 방식으로. 딸이 자라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 아버지는 소유권을 넘기고, 딸이 어머니가 되면 섹슈얼리티는 없는 셈 친다. 그 애의 방황은 섹슈얼리티를 '통제받아 마땅한 딸'과 '거세당한 어머니' 사이에 있었다. 고 생각한다.


뭇 여자들이 나를 망치러 온 구원이라 말하는 페미니즘이 그 애의 방황도 끝냈을까? 이제야 나는 지난 날로 돌아가 그 애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더없이 상냥하게 그 애를 가뒀던 가족과 주변 모든 이로부터 그 애를 데리고 나오고 싶다. 딸도 엄마도 될 수 없어 괴롭다던, 딸이자 엄마로 사느라 괴로웠던 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두 가지 다 벗어나 잘 살아 있는 그 애의 지금을 상상한다. 이기적인 소망이지만 허황된 상상은 아니다. 스스로 구원할 힘이 있는 애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애는 평범한 한국 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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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다정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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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덕질러 - 환상 속의 최애

“최애야 도망쳐야 해!”

꼬꼬마였던 시절 웃음 짓고 또 눈물 글썽이며 읽었던 팬픽을 구해서 다시 읽으면서 나는 내적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내가 애정했던 당시 나의 최애(물론 그때는 최애란 말도 없었다)가 BL팬픽에서 너무나 착취적인 관계의 희생자로 놓여있었다. 십여 년 전에는 그렇게도 나의 심금을 울리던 러브스토리가 지금에 와서는 지독히도 괴로운 스릴러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십여 년 동안 나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야오이, 팬픽 그리고 나의 섹슈얼리티 

집에 무제한 광랜 인터넷이 깔리고 나서 야오이와 BL 팬픽은 나의 학창 시절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이자, 정서적 · 지적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동양 판타지풍 소설의 배경을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물론 주로 야사野史)를 찾아 읽었고, 소설의 주인공이 좋아했던 영화와 음악, 소설을 찾아 읽으며 문화적 소양을 익혔다. 나를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기 이전에도, 최애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소설 속에서) 차별받는 모습에 슬퍼하며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익히기도 했다. 여러 팬픽을 섭렵하고 나니 뻔한 패턴에 조금은 애정이 식었지만, 요즘에도 심신이 지친 날에는 BL 웹소설을 읽으며 힘을 얻곤 한다. 

하위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알페스’를 통칭하며 ‘남성 아이돌을 성착취 한다’고 말하는 것에 코웃음이 났다.​1)​ 나는 이 글을 통해 모든 알페스 논란을 변론할 생각이 없다. 다만 BL소설을 통해 구성된 나의 성적 환상과 욕망에 대한 소고를 통해, BL장르를 통칭하여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비웃긴 일인지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1) [편집자 주] '실존하는 유명인을 등장시키는 팬 픽션(RPF; Real Person Fiction)' 중, 등장인물의 성적 지향을 동성애로 설정하고 로맨틱/섹슈얼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 팬 픽션인 '슬래시 픽션' 내 관계설정을 국내에서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라고 부른다. 최근 한 남성 래퍼를 비롯한 일부 한국 남성이 남자 아이돌 알페스를 성범죄로 일컬으며 공론화했는데, 본문에서 저자가 일컫는 것은 이 내용이다. 또한, 알페스와 BL 장르는 같지 않으나, 저자는 '여성향 성적 판타지'에 초점을 맞춰 알페스와 BL 장르를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궁극의 판타지로서의 남성성을 찾아서 

인소(인터넷 소설)의 엄청난 유행에도 인소는 10대 때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기질이 있었던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다. 당시에는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했음에도 도무지 몰입되지 않았다. 몰입이 너무 안 됐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주(여주인공)에게 너무나 이입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이성애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여주인공의 위치에 나를 놓았는데, 여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도무지 나에게는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나쁜 남자’는 나에게도 결국 나쁜 짓을 할 것 같았고, 사랑보단 우정이 더 오래가는데 왜 굳이 서브 여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애정에 목매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왜 그리 수동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웹소설의 여주들은 다양한 매력을 지닌 것 같지만, 당시 ‘늑대의 유혹’ 부류의 웹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반면에 BL소설은 이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이 몰입할 수 있었다. 나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공과 수 모두에게 매력을 느끼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캐릭터에 공감하고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지 성적지향만 바뀌었을 뿐인데 캐릭터들이 매우 다양했다. 공/수가 정해져 있더라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수동적이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주도하지 않았다. 리디북스의 BL 코너에서 키워드 검색을 하면 무수히 많은 공/수 캐릭터의 키워드를 볼 수 있듯이 ‘호구공’, ‘츤데레수’와 같이 캐릭터들이 매우 입체적이었다. 

게다가 BL물 속의 캐릭터들은 남성임에도 정말 판타지적인 남성성을 지니고 있었다. BL소설에 나오는 남주들의 순정과 헌신은 과시욕이나 연애각본을 수행하기 위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쓸데없는 한국남자의 특성인 자기과시나 자기연민의 욕망을 파트너에게 투사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특유의 남성성을 구현해내고 있었지만, 현실에 없는 어떤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측면이 있었다.

<봄툰>의 편집부장 윤지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장르의 주된 고객인 오래된 독자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줄 안다. 무엇보다 BL에 나오는 그런 남자가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장르를 사랑한다.” 나는 윤지은이 정확하게 BL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스젠더 여성에게 BL은 더욱이 현실과 멀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그 속에서는 더욱 아름다운 남성성을 표현할 수 있다.



변화하는 감수성과 성적 욕망 

물론, 맨 앞에서 말한 것처럼 취향이 바뀌고 ‘성인지 감수성’이 바뀌면서 불편함이 느껴져서 읽지 못하게 된 소설들이 있다. 폭력에 더욱 민감해지면서 나는 더욱 환상에 가까운 소설들을 좋아하게 됐는데, 예를 들어 착취적인 관계라 할지라도 허구적인 세계에 기반해 있다면 괜찮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동성 간 성폭력을 연상시키는 플롯은 참을 수 없다. 반대로 바이섹슈얼이 되면서 GL 장르를 섭렵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여자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다양해지는 것을 보고 몇몇 이성애 웹소설을 결제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의 페미니즘의 파도가 나와 사회를 바꿔놓은 결과이다.

그러니 이런 복잡한 욕망의 세계, 환상 속 판타지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세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사이버성폭력의 한 장르인 것처럼 ‘알페스’를 운운하는 남자들이 어찌 가소롭지 않겠는가. BL물 속 나의 최애의 성별은 남성이지만, 알페스 ‘공론화’를 운운하는 그들과는 다르다. 그들이 아니므로 나는 최애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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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덕질러

불꽃페미액션 액션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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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 퀸와사비가 쏘아 올린 트월킹과 여성의 섹슈얼리티 해방

2020년 최고의 발견은 퀸와사비가 아닐까? 교생 출신 언더 여성 래퍼가 방송에 나와 형광 초록색 머리에 핫팬츠를 입고 트월킹을 추며 랩을 했다. 화끈하고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더불어 사회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을 인지하고 경계하면서 건강한 경쟁과 협동, 우정을 보여주는 퀸와사비와 다른 여성 출연자들의 모습에 여성들은 환호하곤 했다. 하지만 20-30대 여성, 특히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퀸와사비가 추는 이 “트월킹”이 과연 여성의 인권에 해가 될지 득이 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춤이고 이것을 추는 것은 자기대상화(self-objectifiction)라는 입장이다. 즉, 미디어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강조한 춤을 춤으로서 다른 여성들에게,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여성은 성적인 대상에 불과하다는 암시를 던지고 성상품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의 능동적인 섹슈얼리티 표출이라는 입장이다. 더불어 여성이 짧은 옷을 입건, 방송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추던,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이를 컨트롤 하는 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 즉,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2018년 카디비와 시티걸즈가 아예 “Twerk” 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카디비, 시티걸즈가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트월킹을 춘다. 그것도 여러 가지로. 수많은 20-30대 여성들이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경악을 하며 성적 대상화다, 반페미니즘적이다, “주체적” 섹시다(자신은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남성의 시각(male gaze)을 충족시키는 자기대상화라는 의미에서)라며 비판했다. 누군가는 그들의 춤이 여성인권을 몇백 년 후퇴시키는 짓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트월킹은 그렇게 간단히 정의되어 지지도 않고 그렇게 재단해서도 안된다. 트월킹을 둘러싼 역사와 맥락은 매우 복잡하고 이를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에서는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트월킹은 코트디부아르의 Mapouka 춤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역사가 매우 긴 전통춤이다. 이 춤이 미국으로 건너가 90년대 뉴올리언스 바운스신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흑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유행을 하긴 했지만, 주류 백인 미디어에서 조명을 받고 “유행”이 되기 시작한 건 백인인 마일리 사일러스가 MTV 시상식에서 트월킹을 추면서 부터다. 이는 미디어의 엄청난 관심과 함께 진보/유색인종 커뮤니티 사이에서 명백한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며 큰 비판을 받았다. 아무리 그녀가 직접 뉴올리언스에 가서 흑인에게 춤을 배워왔다고 하더라도(실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는 비판의식이라든가, 원본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든가,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자신이 즐기고픈 흑인 문화만을 무단으로 취하는 백인들의 전형적인 문화전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후 트월킹은 역사나 맥락에 대한 인식 없이 단순히 “성적인” 춤이라고 인식이 되는 동시에 엄청난 유행이 되어 현재는 틱톡 한 번만 누르면 보이는,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는 춤이 되었다. 그렇게 퀸와사비를 통해 한국에서도 유행을 하게 되면서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문화전유 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 표현이 사회의 여성혐오적 시각을 통해 왜곡이 되어, 마치 성적 대상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직접 대상화하는 “불쌍한” 여성들, 또는 직접적으로 미디어의 성상품화에 기여하는, “여성인권을 깎아 먹는” 짓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유색인종 여성, 특히 흑인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능동적으로 표현할 때 마다 백래쉬가 생기는 현상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엠마 왓슨은 비욘세의 무대의상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며 부정적인 영향이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비욘세가 미디어에서 독립적이고 힘 있는 흑인 여성을 대표함으로써 수많은 흑인 여성에게 강력한 임파워링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뿐만 아니라, 엠마 왓슨 본인도 잡지 커버로 웃옷을 입지 않은 세미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비욘세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몸이 보이는 옷을 입는 것은 대상화고 유해한 것이면서 자신이 가슴을 보이는 것은 고귀한 일인가? 이는 백인사회가 얼마나 비백인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지위를 한정하는지 알 수 있다. 

1800년대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여성인 사라 바트만은 백인에 비해 훨씬 큰 가슴과 엉덩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납치가 되어 유럽 전역을 돌며 “Hottentot Venus”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서커스와 쇼에 강제로 서게 되었다. 이처럼 서구사회는 흑인 여성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성적인, 동물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러한 시선의 잔재가 흑인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때마다 ‘성적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라는 백래쉬에 기여를 하는 것이다. 마돈나가 “Like a virgin”의 무대로 오르가즘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페미니즘계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해방이라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흑인 여성이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추니까 대중은 태도를 돌변하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유해한 춤이라고 한다. 

다시 카디비와 시티걸즈의 뮤직비디오로 돌아가 보자. 그 뮤직비디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하는 시선으로 이 여성들을 관람하고 즐거워하는 남성 관객은 보이지 않는다. 남성래퍼들의 뮤직비디오처럼 남성들은 옷을 갖춰 입고 비키니만 입은 여성들이 그들의 무릎에 앉아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정말 즐겁게 노래에 맞춰서 엉덩이를 맘껏 흔든다. 이는 남성들의 시선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뮤직비디오 첫 장면에서 남성 아나운서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sexual and inappropriate (성적이고 부적절한)” 이라 말하며 한 남성이 트월킹 영상을 보고 역겨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색인종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능동적으로 표현할 때 마다 나타나는 남성들의 백래쉬를 볼 수 있다. 즉, 자신을 위해 흔들어주고 만족시켜줘야 하지만, ‘어디 여자가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흔드냐’는 것이다. 완벽한 창녀/성녀 이분법의 전형이다. 

카디비 본인은 직접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대해 여성이 무슨 옷을 입든,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추든, 강간을 당해서는 안되고 성차별을 당해서는 안되고 모두 똑같이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월킹은 단순히 여성들이 남성들의 시각과 사회의 요구에 맞춰 자신을 능동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커뮤니티의 고유한 문화였으며, 흑인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표현의 수단이면서 기술을 요구하는 춤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트월킹은 비백인 여성을 향한 사회의 여성혐오적 시선 그리고 ‘걸레 취급(slut shaming: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리고 이에 관한 행동이나 외모, 표현이 사회적 기대와 다를 경우 이를 비판하는 행위)’에 똑바로 맞서는 강력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어떻게 단정 짓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는, 모든 여성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여성이 겪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강력한 임파워링의 매체인 것이다. 


P.S. 
그렇다고 마음껏 아무 생각 없이 트월킹을 추라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마일리 사이러스의 문화 전유 케이스를 설명한 것처럼, 비흑인이 흑인 문화를 원하는 것만 취하고 그에 대한 역사나 의미, 그를 둘러싼 흑인들의 고통의 역사,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의식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문화 전유다. 한국에선 영화 <히든피겨스>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비올라 데이비스가 소셜미디어에 직접 전통춤을 올리며 “누군가에겐 전통문화인데 누군가에겐 트렌드일 뿐이다”라고 언급했다. 즉, 다른 민족/인종의 문화를, 누군가에겐 깊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화를 맘대로, 반성 없이 소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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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게으르지만 세상은 바꾸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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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혜 - 나의 몸을 긍정하기

나는 나의 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마음을 살피는 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몸을 살피는 건 그렇지 않은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 몸을 살피고 알아가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초경을 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학교에서는 생리대(패드)라는 걸 사용하라고 알려줬다. 생리대를 하면 수영장도 갈 수 없고, 땀이 많이 나는 격렬한 운동도 할 수 없다. 피부는 짓무르고, 따갑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생리용품이 있는데, 학교에서 사용하라고 배운 건 오직 ‘생리대’ 뿐이었다. 삽입형 생리용품은 ‘처녀막’을 손상할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자위도 마찬가지다. 성교육 시간에는 맨날 생리대 얘기만 하고, 천 생리대 만들기나 했지 성욕이 뭔지, 섹스가 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조심하라고 했다. 호르몬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이 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자위는 더더욱 조심하라고 했다. 자위를 하다가 상처가 나서 ‘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으니 안된다고 했다. 욕구와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였는데, ‘야한’ 얘기를 하면 ‘발랑 까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심심찮게 어느 학교의 누가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돈을 빌리고 다닌다더라 하는 따위의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에게 섹스는 그저 ‘금기’였다. 


커가면서 마치 성격에서 선악과를 먹은 하와처럼, 가슴이 나오고 엉덩이가 커진 내 나체를 보는게 부끄러웠다. 호기심으로 봤던 포르노그래피 속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와 내 몸은 전혀 달랐다. 울퉁불퉁하고 주름도 많고, 급격히 살이 찌면서 여기저기 튼 자국과 흉터까지. 이게 내 몸이라고? 너무 어색해서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내 몸과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는 바로 자위를 하면서였다. 처음 자위를 해본 것은 결혼을 한 이후였다. 성관계가 어느 정도 익숙해 지면서 용기가 났던 것 같다. 해보고 나서야 이걸 왜 진작 안 해봤을까 싶었다. 자위는 내 몸의 감각을 더 깊게 탐구하고, 기분도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자위를 하면서 거울로 정말 내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도 보고, 질 속에 손가락을 넣어서 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게 되었다. 뭔지도 더 잘 알게 되었다. G스팟이니 뭐니 글로만 배웠던 오르가슴과는 달랐다 


그러면서 패드 생리대와 완전히 작별하고 삽입형 생리대를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가 있는 것부터 아예 없는 것까지 사용해보다가, 비닐도, 플라스틱도 나오지 않는 종이 어플리케이터 탐폰에 한동안 정착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생리혈에서 나는 냄새도 맡아봤다. 내가 알던 것과 달리 생리혈에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가 맡은 퀴퀴한 냄새는 생리대로 인해 사타구니에 땀이 차면서 나는 것이었다. 지금은 생리컵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행착오는 있지만, 탐폰보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고, 장시간 착용하고 있어도 새는 일이 없어 편하다. 수영, 운동도 당연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생리를 하는데도 하는 것 같지가 않다. 너무너무 좋아서 주위에도 생리컵을 권하는데, 다들 아프다는 이유로 피한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는 게 당연한 건데, 다들 내 몸과 어색해서, 내 보지와 어색해서 피하는 것 같아 더 안타깝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자존감’ 여기에는 나의 마음도 포함되지만, 나의 몸도 포함된다. 내 몸을 정말 잘 알고 사랑할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능해지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비키니를 입거나 하는 건 나도 힘들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벗은 내 몸을 보는 게 힘들지는 않다. 벌어지고 축 처진 가슴도 괜찮다. 내 몸무게가 얼마인지도 재지 않는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바디 프로필’이 유행인 것 같다. 극단적으로 체지방을 빼서 마치 모델처럼 근육만 남기고 사진을 찍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슬픈 건 그렇게 극단적으로 체지방을 줄여도, 사진을 찍으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화보에서 보는 모든 사진은 다 포토샵 보정을 거친 사진들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몸은 결국 포토샵이 만들어 낸 환상에 더 가깝다. 모든 몸에 대한 이미지들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이 우리가 우리 몸과 친해지는 것을 방해한다. 오히려 우리 몸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하고, 진짜 발붙이고 서 있는 자신은 외면하게 만든다.


누워서 가만히 심호흡을 한다. 바닥에 붙어있는 내 몸을 구석구석 감각한다. 집중하면 할수록 살아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거울에 비친, 남들이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라, 지금 내가 느끼는 이것이 바로 내 몸이다. 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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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혜

평범한 직장인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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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영 - 부치는 그걸 해

내가 보니 방 씨의 얼굴이 시원스럽고 행동거지가 단엄하여 일대의 기남자(奇男子)다. 이런 영웅 같은 여자를 만나 일생 지기(知己)가 되어 부부의 의리와 형제의 정을 맺어 한평생을 마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 작자 미상, 『방한림전』


인희는 『데미안』을 읽은 뒤 내 안에서 변형되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 김세희, 『항구의 사랑』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없는 느낌이야. 진짜 내 몸이 없고, 몸 없이……. 시커먼 석유 같은 데 푹 절여진 무겁고 이상한 껍데기를 쓰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 같고.  

- 윤이형, 『마흔 셋』 


동성 커플도 결혼하고/ 트랜지션 일반화 됐지만/ 비투비 워어 비투비 비투비  

- 이반지하, <비운의 비투비>



1. 부치의 멸종

부치라는 것이 아직 현존하는 섹슈얼리티인가?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획 연재에 부치는 빠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글을 청탁받았을 때는 자동 반사로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지만, 부치 당사자(부치와 그 섹슈얼리티에 연루된 주변 관계자들 포함)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부치를 과연 ‘지금’의 동시대 페미니스트 운동사에 빠질 수 없는 섹슈얼리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섹슈얼리티로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 맞나? 이제 누구도 자기를 소개할 때 저는 부치고요, 하지 않는다면? 혹은 자신을 부치로 소개하는 것이 웃기지도 않고 촌스럽기만 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이 글도 마찬가지의 감상을 불러일으킬 텐데 말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부치를 향한 혐오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반지하는 <그녀의 창문>에서 “그녀는 조용히 창문을 열고서 내게 말했지. 이젠 너무 지쳐버렸어. 너는 너무 냄새나.”라는 가사를 통해 부치를 침냄새, 악취 나는 것으로 놀려댄 시간을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레즈비언 데이팅 어플리케이션 혹은 퀴어 커뮤니티에서 흔히 사용되는 ‘숏컷 죄송’, ‘티부 죄송’, ‘머짧 죄송’, ‘두 글자 죄송’은 부치의 멸종에 오히려 격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티부’라는 단어에 붙는 ‘죄송’은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제 새로운 젠더 변이들은 ‘트랜스젠더리즘’으로 읽히고​1), 부치가 스타일에 가까운 것이 된 상황에서 자신의 부치니스를 티 내지 않고서 어떻게 부치가 될 수 있는가. 나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 흔히 오독되는 방식, 젠더가 탈부착 가능한 것으로 검은 옷장 속의 부치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것이 어떠한 면에서는 그리 틀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티가 ‘나는 것’과 티를 ‘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티’와 ‘부치’는 겹말이다. 부치의 ‘티’는 패싱에 목적을 둔 과거의 생존 방식이자 지금의 임의적 범주이기 때문이다.

비록 묘연하더라도 여전히 부치는 한국 사회에서 퀴어를 향한 혐오를 방증하기도 하고, 좀처럼 퀴어 하지 못한 전형적인 레즈비언 로맨스물 안에서 사랑(이라고 쓰고 여자)에 빠진 캐릭터로 완성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기의를 찾아내는 일종의 놀이이자 새롭게 발명되는 유머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누군가는 부치가 갈라파고스의 ‘외로운 조지’처럼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던데, 누군가는 아직도 하루 종일(체감 시간) 부치 이야기만 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2)


1) 잭 핼버스탬, 『가가 페미니즘』, 이화여대 여성학과 퀴어·LGBT 번역 모임 옮김, 이매진, 2014, 133~134쪽.

2) 전자는 핼버스탬이고 후자는 2019~2020년의 나다. Halberstam. J(2015), ‘From Sister George to Lonesome George? Or, Is The Butch Back?’, Bully Bloggers, 16 July 2015, 참고링크



2. 부치의 결핍

부치라는 일종의 범주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이건 분명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감상이 있었지만 우선 초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레즈비언에 레벨 또는 단계가 있다면 스스로를 부치로 범주화할 수 있다는 것은 섹슈얼리티 고민에서 졸업한 것이며, 그러므로 초보는 아니고 적어도 중수 정도는 도달한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부치는 점진적인 계단의 형태의 것이 아니었다. 남성성이 여성성과는 반대로 고정적인 것으로 규정됨을 넘어 일종의 조롱 대상이 된 상황에서도 이 구역은 남성성의 과잉과 교란이 출몰하는 날것의 장소였다. 게다가 부치가 되는 것은 어린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그에 못지않은 적극적인 섹슈얼리티 공동체가 필요해 보였다. 섹슈얼리티 범주 안에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일은 능동적으로 마음을 먹거나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 인종, 계급과 같은 범주의 일원으로 정체화의 범주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부치가 되는 것은 자격을 부여하는 자들과 부여받는 자들의 시간과 여유를 잔뜩 투자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부치는 자격을 부여받기 원하며, 관계 안에서 부여되는 자격과 인정은 ‘부치 탈락’, 즉 결핍을 동반한다. 부치를 둘러싼 사건들은 죄다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한번 부치는 영원한 부치, 이러한 문법은 적용되지 못하고 실패의 경험들만이 겹겹이 쌓여갈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치 비체’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또 다른 남성성, 즉 부치의 일시적인 규범을 만든다.

핼버스탬은 「The Queer Art of Failure」​3) 에서 실패가 정상성에 빗금 치는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부치의 남성성에는 실패가 만드는 아름다움, 착취와 폭력의 부재가 발생시키는 매혹적인 찬연함이 있다. 나는 작년에 출간한 에세이 『계집애 던지기』의 「나가며: 실패한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불안정한 것들이 발생시키는 새로운 것”에 대해 말한 바 있다.​4) 실패한 여자아이들, 그러니까 소녀 되기와 소년 되기에 실패한 여자아이들은 소년 같은 소녀에서 남자 같은 여자로 성장한다. 그러나 부치의 남성성은 여성의 신체를 통과한다는 점에서 남성의 그것과 다르지만 완전히 실패한 남성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장 부치스러운 레즈비언도 ‘남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5), “부치는 남성의 모방자가 아니라 경쟁자”​6)라는 말에 아무리 밑줄 그으며 살아도 남성의 남성성과 부치의 남성성은 연속체 속에 있다. 부치의 남성성은 섹스-젠더-섹슈얼리티가 연속적이라는 인식, 즉 남성성은 남성의 몸에서, 여성성은 여성의 몸에서 나온다는 인식에 교란자로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만, 해체라던가 파괴라던가 하는 상황적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한 특권을 아무도 멸종 위기의 부치에게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치는 젠더 교란자면서 동시에 이원적 섹슈얼리티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치-펨’과 같은 범주를 낡은 욕망으로 치부하는 것은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박해하는 체계와 대립하며 발전한 역사와 경험을 빈곤하게 한다는 게일 루빈의 말처럼 부치는 남성성이라는 표현물을 공유하며 규범에 영합해왔다.​7) 일명 ‘바지씨’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한국 부치의 임의적인 범주들, 그리고 계보를 따라오다 보면 ‘지금’의 부치는 남성성의 완전한 실패에 실패한 섹슈얼리티로서 또 다른 변이를 새롭거나 혹은 시대착오적인 모양새로 만들어낸다.


3) Halberstam. J(2011), ch3. The Queer Art of Failure, The Queer Art of Failure, Durham, NC:Duke University Press.

4) 허주영, 『계집애 던지기』, 이음, 2020, 177쪽.

5) 게일 루빈, 『일탈』, 신혜수 외 옮김, 현실문화, 2015, 471쪽.

6) 한채윤, 「레즈비언의 남성성: 공존, 반전, 경쟁, 갈등하는 젠더」,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 모음, 2011, 138쪽.

7) 게일 루빈, 위의 책, 487쪽.



3. 부치-트랜스젠더 남성, 부치-탈코르셋

할버스탬은 부치를 시스젠더도 트랜스젠더도 아닌 육체적 과용(catachresis)이자 잘못된 이름으로 설명한다.​8) 그러나 부치와 트랜스젠더 남성은 정체성과 관련하여 연속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왔다. 부치는 트랜스젠더 남성의 과도기라는 주장들, 혹은 두 범주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에 대한 중간자 신체(할버스템), 경계 전쟁(게일 루빈)과 같은 논의들이 있다. 이론화의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남성과 부치의 정체성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연속체로 분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차이점들을 나열하거나 섹슈얼리티 방향의 교집합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부치와 트랜스젠더 남성의 차이에 대한 질문들은 부치와 탈코르셋 운동의 여성 주체들의 외연에 다시 배치되었다. 왜냐하면 부치와 트랜스젠더 남성, 부치와 탈코르셋은 정체성의 문제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장실에서 성별을 의심 받는 문제, 미용실에서 숏컷 비용을 다르게 지불해야하는 문제, 남성용 기성복을 입는 문제들이 바로 연고도 없는 둘을 이성애 중심사회에 대한 성토대회 참가자 대기실에서 나란히 만나게 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와 동시대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들이 같은 문제를 공유한다는 것은 부치의 정체성이 스타일의 문제로 옮겨갔다는 나의 앞선 주장을 뒷받침한다. 일상에서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면서도 누군가는 새로운 남성성을 누군가는 새로운 여성성을 고민하는 것만 보아도 탈코르셋과 부치 섹슈얼리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누구는 둘을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구분은 간단하다. 누구는 꾸미고, 누구는 꾸미지 않는다. 그런데도 구분하기 어렵다면 이는 부치가 충분히 퀴어 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체크 셔츠와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해있지 않은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한국에서 부치 섹슈얼리티가 배치된 방식과 그 맥락들을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하고 싶었다. 과거의 ‘트랜스젠더-부치’의 구도와 지금의 ‘탈코르셋-부치’의 구도가 세워진 맥락과 효과에 대해서는 부치가 옥체 보존하며 멸종되지 않고 살아 있다면, 또 다른 지면에서 쓰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마지막 문단은 부치의 안녕, 부치의 변이, 부치의 지속을 바라는 마음을 진정성 있게, 담는다. 부치의 진정성은 여성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획득된다. 여자를 사랑으로 가진다고 해도 어떠한 가부장적 해택을 누릴 수 없는 부치의 ‘진짜’ 사랑은 가부장을 뛰어넘는 진정성이다. 그러므로 부치는 그걸​9) 한다. 멸종의 위기와 결핍의 반복 속에서도 부치는 그걸 한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랑이 유효한 것은 동시대적 맥락에서 생존을 위해 탈범주를 꾀하는 부치의 남성성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할 놀이로서의 부치는 멸종했을지도 모르지만 스타일로서의 부치는 살아남았다. 남성성이 빈곤의 나락으로 향하는 상황에서도 부치의 남성성이 그걸 한다면, 그걸 할 수 있는 것이 부치 뿐이라면, 부치는 남성성의 유일한 생존자 아닐까?


8) Halberstam. J(2015), 위의 글.

9)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각주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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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영

시인, 문학연구자.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에서 글을 쓰고 공부하고 있으며, 저서 『계집애 던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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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선 - 휠체어와 욕조 사이에서 균형 잡기

긴장으로 균형을 맞추는 관계  


나는 일상에서 ‘보조’가 필요한 몸을 가진 장애여성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볼 때 ‘전동휠체어’를 가장 먼저 인식한다. 물론 휠체어를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한다기보다는 ‘불편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상징되는 의미가 크겠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가령 수화기 너머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 아까 전동휠체어...’라는 말만으로도 내 존재가 순식간에 설명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곳에 언제 갔는지, 무엇을 샀는지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떠올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왠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전동휠체어’를 빼놓고는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보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씻는 등의 과정에서 내 몸을 만지거나, 들어 올리는 것이 익숙해지는 일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관계에서 내 몸을 보여주기만 했지, 내가 제대로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보조를 하는 사람에게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몸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보조가 편한 위치는 어디인지 매일같이 설명해왔는데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몸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몸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 고민하는 일은 관계를 맺어 가는데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활동지원사나 일상에서 만나는 동료들에게 몸을 보이고 보조를 요청할 수는 있더라도 관계가 쌓이려면 ‘몸에 대해 말하기 조심스럽거나 혹은 보조가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 분명한 건 장애가 있는 몸이 ‘다칠까봐, 아플까봐’ 관계 맺기가 조심스럽다면 그다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내 몸을 알아가는 동시에 서로에 몸을 다 안다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긴장감은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그 경계가 조금씩 흐릿해지는데 특히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내가 몸을 보이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몸을 옮겨야 하는 모든 일에 파트너의 보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조를 받는 위치에서 느끼는 고맙고 미안한 감정들은 관계를 주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장애여성인 내가 파트너와 섹스를 할 때 내 몸이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담감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파트너가 나와의 관계에서 보조를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 소통하는 것이, 파트너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이게 잘 되지 않을 때 갈등이 생기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이 잘 생기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상호적이어야 하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면 내가 이 관계를 주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파트너와 소통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낙담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기울어진 관계에서 내 쪽으로 아주 조금씩 균형을 맞춰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을 파헤쳐보기


“욕조에 한 번 들어가 볼까?, 아니야, 옷을 다 벗고 들어가려면 엉덩이랑 보지가 적나라하게 보일 거야, 그건 아직 싫은데, 의자를 이렇게 놓으면 나 혼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허리에 힘이 없어서 둥둥 떠다니면 어떡하지,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똥이 마려우면 어떡해?, 만약에 둘 다 미끄러져서 다치면 그땐? 이게 진짜 로맨틱하긴 한 거야?”


장애여성이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가득한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한 고민들이 끊이질 않았는데 내가 가진 정보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제한적인 내 몸을 확인하거나 실패하고 좌절하지는 않을지, 그 과정이 나에게도 파트너에게도 ‘로맨틱’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상상과 현실은 차이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절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욕조 안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생각보다 더 미끄러워서 보조를 받기도 어려웠다. ‘욕조에 몸을 담그는’ 로망을 실현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그다음을 더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했던 것은 내가 장애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에서 ‘할 수 없음’을 더 우위에 두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문제였던 것을 알고 나는 욕망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해보는 것이다.


 


관계가 채워진 권리를 상상하며


산부인과의 경우 전동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두 세 차례 정도 방문을 했었다. 그런데 매번 “성관계 경험은 없죠? 보호자는 어디 있어요?”라는 말을 매뉴얼처럼 들었던 경험이 있다. 섹스 경험이 있는지 묻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경험이 없음을 질문하는 의도는 장애여성은 당연히 파트너와 관계를 맺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에서 대부분의 경우 나를 소통의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정보들을 나에게는 묻지 않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제외될 때 장애여성에게 재생산이 기대되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의 의료 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병원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내고 편의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접근성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건물 진입뿐만 아니라 접수대나 진료대, 모니터 등에서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 기본일 때, 그냥 돌아서지 않고 의료인과 함께 진료가 가능한 대안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나의 입장에서 그런 기대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어렵지만 이 공간에서 내 존재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내가 병원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인권은 존엄성에 기반 하여 모두에게’ 주어져야 함을 전제로, 어떤 사람의 특성이나 조건에 따라 권리가 제한받거나 박탈되는 상황을 바꿔야만 한다. 권리는 소유하거나 일방적으로 받는 선물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다. 이것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원칙이 성적 권리 앞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1) 

낙태죄 폐지 이후 국가의 역할 속에서 장애여성은 성과 재생산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여야 한다. 그리고 이 권리가 확보될 수 있으려면 장애여성의 삶의 맥락 안에서 동료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고 환경과 조건만이 아닌 관계가 비어있지 않은 권리를 이야기할 때 가능해질 수 있다.


1) 나영정, Enjoy Sex(인조이 섹스), 성적 권리를 향유한다는 것, 비마이너, 2020.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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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선 

정상성에 도전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는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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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현 - 실


나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2013년에 뮤직비디오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저렇게 연기를 하고 있다. 지금은 연기하는 시간보다 글을 쓰거나 다른 걸 편집한다거나 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연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벌써 8년쯤 되었으니 새삼 그 시간이 길고도 짧다.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바늘구멍에 실을 꽂는 일은 똑같이 침을 묻히더라도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까. 실같이 마른 점이 유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 연예인들은 사회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통 말랐다. 안 마른 주인공을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건 이상하리만치 몽땅 말랐기 때문인가, 아니면 바늘구멍이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일까. 안 말랐다가도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나면 죄다 말라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구멍에는 좀 문제가 있다. 아무튼, 작은 구멍을 용케 빠져나와서는 인터뷰를 많이 했다. 비교적 옛날에 했던 인터뷰는 도저히 다시 볼 자신이 없는데 거기엔 아무런 필터 없이 마구 뱉어놓은 말이 한몫 단단히 한다. 그러니까 그때엔 ‘섹시하다.’라는 말을 그렇게나 많이 했다. 정확한 정황을 얘기하자면 매력 포인트가 뭐예요? 따위의 질문에 음, 저는 알고 보면 섹시해요. 호호호. 라고 대답하곤 했다는 것이다. 농담인 마냥 뒤엔 웃음을 꼭 붙였지만 사실 섹시해 보이길 원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도 비슷하게 대답했다. 섹시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 말이 뭐가 문제냐 싶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나에겐 ‘부족함을 가리기 위한’ 어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따라붙던 놀림을 상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알고 보면’이라는 말 뒤에 ‘안 그렇게 보이지만’이 숨어있었다는 것이 못 견딜 지점이다. 얼어 죽을 섹시다. 그 ‘섹시’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실체는 사회에서 규정하는 여성성의 수행이란 것을, 가슴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탱탱한, 그러니까 얼어 죽을. 


나는 말랐다. 뼈 자체가 작아서 몸집이 조그맣다. 마른 만큼 가슴도 작다. 라기보단 없다. 그래서 예상하듯 어렸을 적부터 내 별명 중 하나는 껌딱지였다. 종종 학교 복도에서 빨리 뛰다가 주임 선생님에게 잡히는 일은 바닥에 붙은 내 가슴을 떼어내는 벌로 이어졌다. 복도든 길가든 어디에든 처량하게 붙어있는 껌딱지가 나는 너무 싫었는데 그 분노는 껌을 향했다가 껌을 뱉은 새끼에게 향했다가 결국엔 나에게로 돌아왔다. 분노는 원인이 제거되면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땐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제 모습을 바꾼다.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시선은 콤플렉스의 심연에 종종 음침함을 심어놓곤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친구들 앞에선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양 굴다가 집에 와서는 가슴이 커지는 쿠키를 먹는다거나, 내 가슴이 어때서, 외치다가도 가슴이 커지는 쿠키를 먹는다거나. 맞다. 가슴이 커진다는 쿠키를 먹은 적이 있다. 가슴 커지는 쿠키가 뭐냐 하면, 말 그대로 가슴이 커진다는 쿠키이다. 에스트로젠, 일명 ‘여성호르몬’이 들어있어 가슴이 커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그때 어떻게 구했는지, 어쨌든 어떻게 구해서 그걸 먹었다. 부푼 기대감으로 한 통을 다 먹었을 무렵, 어느 날 밤에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며 엉엉 울다가 결국엔 엄마 방으로 기어들어 가서 잤던 기억이 난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바로 다음 날에 기사가 하나 났다. ‘가슴 커지는 쿠키. 큰일 날지도 몰라요.’ 나는 깨달았다. 가슴이 작은 일은 결국 건강을 버리거나 돈을 많이 쓰게 되는 일이란 것을. F컵 쿠키나 딸기 우유 100개, 온갖 가슴이 커지는 기계와 마사지 크림 그리고 물방울 모양의 실리콘 가격. 커다란 뽕이 달린 브래지어는 자존심이 되기도 전에 숨이 벅차다.


누군가의 말을 대신한다. 어떤 감독과의 술자리에서였다. 그 감독은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노출이(쓸데없이) 있는 작품이었음에도 비교적 큰 영화였기 때문에 당시 그는 그 역할을 맡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감독은 그 배우의 가슴이 작은 것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그는 가슴은 없어도 엉덩이는 있는 편이어서 괜찮지 않을까요? 되물었다. 그 말을 들은 감독은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단시간에 가슴을 키울 수 있는 시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턱을 쓸어내리며 그의 몸이 지 몸인 양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면서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불쾌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으니 뭐, 그냥 웃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그곳은 대낮의 뒤풀이 자리였고 그 자리는 악연의 시작이었으나 그는 이름 한 글자도 꺼내지 못하겠지. 


우리는 마른 여성을 선호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린이였을 땐 먹어도 먹어도 찌지 않는 것이 집안의 걱정거리였을지 몰라도 ‘여자’가 되고 난 뒤부턴 커다란 자랑거리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정한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선 마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볼륨 있는 가슴과 골반을 함께 지녀야 한다는 지점, 그것은 끝이 없는 레이스여서 시작했다면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상하다. 가슴은 분명히 내 몸에 달려있고, 내 몸은 내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데 그걸 통제하려 드는 건 내가 아니라는 점에서. 허리 뒤에 망한 문신은 내 눈에 잘 안 띄어서 자주 까먹는데도 바라보는 자에 의해 나는 계속 문신이 망했음을 인지한다. 그러니까 안 망했다고, 그 옆에 문신은 그래도 괜찮지 않냐며 나는 계속 악을 쓰며 항변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만 그만둘까 보다. 네가 내 몸을 멋대로 규정짓는 꼴도, 그래서 내 어깨가 자꾸만 휘어지는 것도 이제 더는 못 보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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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현

연희동 어딘가에서 세 고양이와 살고 있다. 연기를 하고 간간히 글도 쓴다.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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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리 - 섹슈얼리티에 대해 폭삭 식어버린 한 ‘영영페미’의 다시, 성 해방 고민하기

내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있을까. 불꽃페미액션의 <성(性)스러운 페미 보고서> 기획에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기뻤지만, 곧 걱정에 휩싸였다. 솔직히 이제 섹슈얼리티를 고민하거나 실천하는 일에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시위 이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영영페미’이다. 그런데 왜 불과 5년 만에 이렇게 폭삭 애늙은이(?)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걸까.


▲5년 만에 애늙은이(?) 페미니스트가 되다

페미니즘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섹슈얼리티에 대한 모색이 열렬하다 못해 ‘성적 과잉’ 상태였다. ‘한국 남자 섹스 못한다’로 대표되는 가부장 중심 섹슈얼리티에 대한 메갈리안들의 고발, 은하선의 <이기적 섹스>와 정두리의 <젖은 잡지>의 등장과 맞물려 ‘성 해방’의 시기가 찾아왔었다. 개인적으로는 성 전문 매체 기자로 활동하고, 섹스토이샵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성적 실천의 영역을 넓히는 데 몰두했다. 여성향 포르노를 찾아본다던가 바이브레이터를 구매하고, 아마존 체위(여성이 남성에게 삽입하는 구도의 체위)나 백 가지가 넘는 성애의 목록을 수집했다. 또 ‘조신남’이나 ‘영앤핸섬 빅앤리치’를 찾으며 역으로 남성을 대상화하며 성별 권력 관계를 역전해보고, 페미니즘 BDSM(Bondage·Discipline, Dominance·Submission의 4가지 성적 지향)과 폴리아모리 그리고 무성애 지향에 대한 논의를 익혔다.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운동’을 고민한 여성의날 ‘탈연애 선언 프로젝트’도 꾸려봤다. 데이트 앱 만남으로 성적 실천을 모험하면서,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에서 자유연애 시장에서 사랑이 여성에게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맥락과 감정 구조들도 배웠다. 그리고 “생식기와 성기는 다르다”라고 시작하는 한채윤의 <여자들의 섹스북>을 읽고서는 삽입과 사정 중심 섹스 바깥의 실천을 시도했다. 또 섹슈얼리티는 주거권 이슈나 생활동반자법, 노동시간 단축 등과 연계해 풀어나가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러니까 솔직히(꼰대스러워 문장으로 옮겨 적기 망설였지만) 이제 내 선에서는 고민해 볼 거 다 해 보고, 알 거 다 알고, 시도해 볼 거 웬만하면 해봤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거나 다양한 섹스를 해 보고, 섹슈얼리티에 대해 완벽한 앎의 상태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자신만만하게 기존 정상 사회의 ‘빻은’ 것들을 ‘탈(脫)’ 하겠다는 선언은 가능했지만, 그다음이 막연했다. 에바 일루즈도 사랑은 왜 아픈지는 설명해줬지만, 어떻게 해야 덜 아픈지는 말을 흐렸다. 정답은 이미 정해진 것 같긴 했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긍정하고, 파트너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첨단 바이브레이터를 구비하고… 구체적으로는 홍승희의 <붉은 선>에서처럼 성기 결합이 아니라 서로 자위하면서 하는 섹스를 시도해 보는 참고 예시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섹스 기회가 적은 편이었고, 어쩌다 생겨도 적극적으로 실천을 모색하기에 스스로 소극적이고 ‘노오력’이 부족한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또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 일에 몰두할(?) 시간이 아깝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내 섹슈얼리티는 실천 면에서도, 목표 면에서도 정체된 감각이었다.


▲쾌락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PC한’ 섹스

도저히 글쓰기 진도가 안 나가던 차에, 눈앞 책꽂이에 꽂힌 클라리스 쏜의 <S&M 페미니스트>가 눈에 띄었다. 굵고 새빨간 폰트에 킬힐 이미지가 그려진 표지 그리고 ‘S&M’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와 달리, 방대한 분량에다 복잡한 논의들이 전개돼 골치 싸매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 조금 훑어본 후 먼지가 쌓여가던 책이었다. S&M은 편견과 달리 오히려 철저한 합의가 필요한 실천이라는 건 익히 아는 바였다. 다시 펼친 대목에서, 쏜은 책에서 아주 세세히 자신의 경험과 주변의 인터뷰를 토대로 어떻게 파트너들 간에 관계 후 피드백을 하고, 합의해나갔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욕망하는 행위를 세세히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이번 섹스에서는 어떤 게 아쉬웠는지 평가하고, 실은 이번 섹스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었다는 고백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긴밀한 연인 사이에서도 섹스에 대해 이런 수준으로 대화를 나누기 힘든데… 이렇게 대화하려면 보통 신뢰 관계가 아니겠잖아?’


페미니스트들이 성적 합의와 동의를 강조할 때면, ‘그럼 관계 때마다 일일이 동의 여부를 묻고 계약서를 쓰라는 거냐?’, ‘PC(political correctness)한 섹스는 쾌락적이지 않다’라는 말이 붙곤 한다. 물론 제대로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섹스는 폭력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들에 어느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다. 만약 내 파트너가 다음과 같이 동의를 구한다면? ‘뽀뽀해도 돼? 이제 키스해도 돼? 허리 감싸도 돼? 다시 키스해도 돼? 3분만 더 키스해도 돼? 그리고 또…’ 천년의 성욕도 바사삭 식을 것 같다. 그러면 결국 ‘PC함’은 쾌락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까? 또 섹스에 있어 동의와 비동의로 명백히 가를 수 없는 회색지대는 모두 비동의의 영역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걸까?


▲지금까지 섹슈얼리티 논의에서 빠졌던 것

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처럼 나의 쾌락을 주체적으로 밀고 나갈만한 ‘인물’이 못 되었다. 수동적인 성향, 그리고 성별과 계급이 대부분 약자인 위치가 맞물려 파트너와 동등하게 협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1:1 관계에서라면 고립되기 쉽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4B 운동이나 연애 상대로서의 ‘남페미’에 대한 논의, 페니스 삽입 및 사정 중심에서 벗어난 섹스에 대한 논의 모두 파편화된 개인, 혹은 개인과 개인 간의 고립된 1:1 관계를 가정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침대 위의 일’은 거의 당사자들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 섹슈얼리티에 대한 나 홀로 각성, 평등한 소통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한 수 접고’ 들어오는 ‘조신남’을 찾는 시도, 그리고 ‘남페미’의 인성에 기대하고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합의를 개인만의 몫, 사적인 차원으로만 여겨왔다. 섹슈얼리티를 다룬다고 할 때 사적인 차원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차원 이 사이를 고민하는 논의는 적게 들렸다.


최근 신뢰할만한 여성주의 단체에 가입하거나 몇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되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점과 감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단체와 공동체 모두 공통된 룰이 있다. 성애적 파트너 관계가 여타 구성원들 관계보다 우선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성인이라고 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이 구성원의 자유로 해석되지 않았다. 섹슈얼리티 역시 관계의 일부이며 그래서 관계 맺는 역량, 그 관계를 공동체 차원에서 고려하고 판단하는 역량까지 요구된다는 것이었다. 언뜻 은밀한 사적 영역에 대한 자유와 공동체를 고려하는 일은 모순돼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공동체 관계가 섹슈얼리티 관계와 시너지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 소식지에서 한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실마리가 됐다. “결국 그런 믿음인 것 같아요.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지금 당장 중재하지 않아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내가 모든 걸 하지 않아도 된다’, ‘꼭 여성주의자가 이걸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조금씩 변해온 다른 지역주민들도 이 일에 대해서 개입을 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기니까, 훨씬 더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조합 활동을 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개입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례들을 점점 접하면서, 좀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관계 개입 당사자들이 다양하고, 평등한 대화가 훈련이 가능한 ‘소통 구조’에서는 섹슈얼리티만 외따로 불평등한 영역이기 어려울 것 같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까지 섹슈얼리티 관계에서 협상하고 합의하는 일이 개인에게 지나치게 ‘몰빵’되어왔던 건 아닐까. 평등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훈련하는 관계망에서는, (그 관계망의 일부인) 섹슈얼리티 당사자들 간에 협상하는 언어와 근거가 보다 촘촘하지 않을까. 이런 신뢰의 맥락이 성적 경계를 고정해두기보다, 과감히 탐험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오면, 성적 합의를 매번 구하는 일은 어떤 신뢰 관계도 없는 사이에서는 의무인 게 맞다. 이 의무가 우스꽝스럽다면, 상대방을 존중할 역량 없이 쾌락을 바라는 욕망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게 아닐까.


내게 대개 쾌락은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회피의 대상이었다. 상대는 물론 나의 욕망을 정확히 대면하는 역량, 갈등을 직면하는 힘, 자기 돌봄, 부지런함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사정 중심의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파트너가 사정할 때 일을 마치는 게 덜 쾌락적이어도 ‘편했다’. 성적 경험에 있어 내가 수치스러웠던 일은 대개 내 알몸보다 내 쾌락을 쉽게 양보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까지 내 쾌락에 (동료 시민으로서도 신뢰하기 어려운) 시스 헤테로 남성이 필요하며, 또한 남성에게 사랑할만한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무시하기 어렵다. 공동체를 고려하는 일보다 성애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습관도 여전히 있다. ‘시스젠더 헤테로’라는 정체성이 페미니스트로서 콤플렉스라는 말에 동의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곧 남성에게 인정, 친밀감, 쾌락을 모두 의존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섹슈얼리티의 의미는 스킬에서, 즐거움에서, 관계에서, 사회로 옮겨왔다. 지금은 관계망 그리고 관점으로 읽힌다. 아무래도 이제 한 ‘영영페미’는 또 다른 성 해방 모험으로 발걸음을 떼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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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리 작가

미디어스 <도우리의 미러볼>, 한겨레21 <청춘의 겨울> 등을 연재했다. wrdoh@daum.net